2023년 상반기의 발자국
그런데 한편으로는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저렇게 불안해했지만 일기장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서 돌아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걸어온 게 보였기 때문이다. 잘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늘 일기장을 찾으며 자신감 없는 모습을 내비쳤지만 어설프고 모자란 모습으로도 엉금엉금 발자취를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하는 쪽으로 삶은 스며든다.” 내가 좋아하는 은희경 작가의 책 《생각의 일요일들》에 나오는 문장이다. (…)
헛발을 내디뎠다 생각했던 길에 내 발자취가 남아 지반이 단단해졌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걸어갔던 불안한 발자국들이 모여 지금의 토양이 됐다. 이 토양 위에서 나는 여전히 떨리는 걸음으로 한 발 한 발을 내디딜 테지만, 내가 딛고 있는 토양이 얼마나 비옥한지 알기에 계속 걸을 수 있다.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이제는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잘하고 있던 거였어.
《취향의 기쁨》 권예슬 中
발자국을 모아
코로나 2차에 걸린 김에, 못 다 썼던 글을 마무리해보려한다. 나의 23년 상반기 발자국들 모아보기👣
드디어 해외 여행
직딩 n년차에 드디어 첫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입사한 이후로는 쭉 코시국이었기에, 보통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한번씩 떠나보는 그런 해외 여행 한번을 못갔었다. 그 때문인지 해외를 간다면 가장 가기 어렵고, 머나먼 이국 으로 떠나고 싶었다. (이게 바로 보복여행이다!) 구글맵을 켜서 우리나라 반대편 어디로 갈까 찾다보니 저 먼 구석에 아이슬란드가 눈에 들어왔고, 그래! 겨울을 가장 겨울스럽게 보내자! 며 얼음나라 아이슬란드, 그리고 영어권 국가에 가고 싶다는 이유로 영국을 골라 훌쩍 17일 간의 여행을 떠났다.
아이슬란드는 용감하게 셋이서 차를 렌트해서 다녔고, 영국은 홀로 첫 여행이니 꽤나 다사다난했을테다. 그만큼 자유롭게 보고, 새로이 느낄 수 있었는데, 아이슬란드에서는 블랙 아이스 위에서 차가 정확히 540도 미끄러져 돌기까지 한 아찔한 경험도 했다. 홀로 여행이 무서웠던 때도 있었지만, 동무가 되어준 애정 어린 한국 동행 분들, 정성스레 사진을 찍어주고 말 걸어준 길 위의 분들에게 사진을 볼 때 마다 여전히 고마움을 느낀다.
그때 본 풍경과 내가 느낀 생각을 절대 잊지 않겠노라 했지만, 벌써 이렇게 기억이 흐려지는게 못내 아쉽다. 미래의 내가 이렇게 아쉬워할 줄 알고 과거의 내가 선제적으로(?) 고프로까지 사가서 부지런히 영상을 찍어왔건만, 아직도 그 선명한 영상들은 SD카드 안에서 동면 중이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했고 어떤 걸 느꼈냐면… 은 여행기로 담아보려 한다. To be continued. (올해 안에 영상 편집..할 수 있겠지?😅)
Software 직군이 되다
올해 Software 직군으로 전환하면서 데이터 엔지니어링 직무로 변경되었다. 이건 나에게 꽤나 마일스톤같은 일인게 나는 문과였기에 과거에는 내가 Software 직군이 되리라 상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만의 시험이라고 생각했었던 알고리즘 코딩테스트를 통과하고 Software 직군 전환 요건을 충족하였는데, 이 시점에 TF 조직으로 이동하며 Data Governance의 업무를 맡아 데이터 엔지니어링의 직무로 변경하게 되었다.
‘내 전공을 잘 살릴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개발 전공이 아닌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불안한 적이 나는 여러 날 있다. 그러나 생각하는 쪽으로 삶은 스며든다고 하던가.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며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그때마다 내딛었던 걸음들이 결국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 발걸음으로 또 나는 어떤 길을 만들어 가게 될지 궁금하다.
데이터 엔지니어로 전환하자마자 ‘데이터 엔지니어의 모닝’라는 광고가 나왔다. 아무래도 이름이 Data + Engineer이다보니 요즘 관심 받을만한 직무인가보다. 아직은 데이터에 대해서도, 개발에 대해서도 아직 알아가야 할 게 많지만, 이 직무에서 배우는 것들이 흥미롭고 또 재미있다! 그런데 19시에 출근해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이런 부분에 대해 일년 동안 배워보고, 다음에 글로 다뤄봐야겠다.
랏을 흘려요?
“죄송하지만.. 마는게 뭐예요?” 예전에 ‘테이블을 만다’는 표현을 처음 듣고 내가 한 질문이다.
- A: “테이블 다 말렸어요?” —> (테이블을 바짝 말린다고?(dry))
- B: “네, 테이블 다 말았어요.” —> (테이블을 돌돌 말았다고?(roll))
이런 대화를 들을 때 마다 나는 머릿 속에 괄호 속의 이미지가 그려져 혼자 속으로 웃음을 참곤 했다.
업에서는 으레 모두 통용되는 고유한 표현이 있다. 테이블을 만다, 그리고 공정을 태운다, 랏을 흘린다. 말아? 태워? 흘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이지 하다가 결국 적응해서 나도 똑같이 쓰게 되는 표현이다. 쓰다보니 뭐 이보다 더 적절한 동사가 없달까.
지금 있는 회사는 가장 복잡한 업 중 하나이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판매, 제조, 인프라 등 여러 도메인의 다양한 프로세스를 거치며 많은 직무의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워낙 어려운 용어와 고유한 낯선 표현으로 단어조차 알아듣는게 많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나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 불현듯, 내가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게 익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적응을 잘 하고 있다는 편안한 기분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렇게 동화된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게, 처음의 낯선 느낌을 잊지 않고 싶다.
요즘, 다시 아날로그
다들 알다시피 직장인은 월화수목금 출근하면 주말은 고작 이틀. 평일엔 퇴근하고 운동만 다녀와도 금방 10시다.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걸까? 이 중 진짜 내 것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요즘에는 사는 건 꼭 무엇을 위해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위해 사는게 아니라면 현재에 충실하고 나의 순간들을 잘 담아둬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나의 의식이, 사진으로 간직하는 것에 닿아버렸다. 그것도 아날로그 필름 사진. 집 장롱에 잠들어 있던 아빠의 오래된 1996년도 올림픽 기념 카메라를 찾았다.
사진은 순간을 오래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필름 카메라는 한 장 씩 소중하게 셔터를 누르며 그 순간을 더 강렬한 기억으로 만들어 준다. 당장 결과를 알 수 없으니 인화까지 기다리는 설렘을 준다. 그렇게 인화된 사진은 잘 보이는 어딘가에 걸어두고 기억을 곱씹게 한다.
나는 아이패드로 다이어리 쓰기를 몇 번이나 도전하다가, 실패하고는 여전히 종이 다이어리를 쓴다. 언제 어디서나 읽는 전자책도 좋지만, 정말 아껴보고픈 책은 종이책을 구매해 형광펜을 치며 본다. ‘내 것’이라는 소유의 인식은 여전히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대체할 수 없나보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로 AI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일까..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날로그가 좋아지려는건 Y2K 유행에 나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반응 때문인가, 아니면 이것 조차 기억의 향수인가. 어쨌거나 내가 이 블로그에 기록하는 지금 이 행위도 흩어지는 기억을 붙잡는 그 일환인 것 같다.
뿌듯했던 순간들
- 👏 홀로 하는 첫 여행을 했다.
- 👏 개발자들의 영역이라 생각했었던 코딩테스트 SW Certi Advanced를 통과했다.
- 👏 내가 간사인 학습조직이 상반기 우수 조직으로 선정되어 사장님께 시상을 받았다.